천주교에 대한 탄압으로 발생한 신유박해(1801년)로 귀양을 떠난 지 어느덧 십수 년이 흘렀다.
정약용과 정약전은 자신의 유배지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거나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제 그들의 인생 후반부 유배지에서의 삶속에서 그들이 이룬 업적을
하권에서 잘 따라가보자.
1.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다산초당을 지어 후학들을 가르치며 관리로서 백성을 보살피는 방법과
관리로서의 자세, 책임을 자세히 서술하여 책으로 만들어 제목으로 목민심서라 하였다.
책 속에는 관리로서의 기본자세뿐 아니라 재정관리, 행정의 투명성 등을 설명하며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관리의 첫 번째 덕목임을 강조한다. 이는 그 시절 소위 탐관오리라 일컬어지는
관리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진 백성들의 고단한 삶은 단지 그들의 삶만이 아니라 나라의 근간을 좀
먹는 것임을 백성과 함께 생활하며 피부로 느낀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백성을 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현실이 변하지 않음은 그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과연 그 시대 권력을 흔들었던 수많은 정승판서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청나라를 통해
수많은 신시대의 정보를 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나라의 발전은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참으로 답답한 부분이다.
2. 정약전의 자산어보
흑산도로 귀양 간 정약전은 물고기에 대한 관심으로 근해에서 잡히는 해양생물에 대한 연구로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기록하여 '자산어보'라는 책을 집필한다. 그는 자신의 유배지 생활을 도와주던
식구들과 주민들에 대한 애정으로 그들에 대한 많은 정성을 쏟는다. 특히 잡히는 수산물 가공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이뤄 경제적 도움을 준 부분은 이들 형제들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정약용이 학문적으로 의지할 만큼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소위 그 시절 주요 학문인
성리학에 대해서는 귀양을 온 후에는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부들의 고단한 삶을 현장에서
목격한 그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알고 있던 천문학을 이용하여 기상을 예보하여 어부들이
해상에서 날씨로 인해 만날 수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한 점이나 꾸준한 어류에 대한 연구로
어류별 출어시기 등을 조절하여 어획량을 늘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그 시대를 생각하면
획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3. 형제들의 안타까운 운명
서로에 대한 애틋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두 형제는 유배를 떠난 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간혹
서신으로 전하며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위로하며 지낸다. 유배를 떠난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이들에 대한 유배를 풀어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가 조정에 들어가 유배가 풀릴 것이라는 소식이
이들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유난히 정약용에 대해 반감을 가진 대신들의 반대로 이 역시 무위로
돌아간다. 유배가 풀릴 것이라는 소식에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생활하던 정약전은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 삶에 대한 의지가 꺾여 안타깝게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중풍을 맞는 등 여러 건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디어 낸 약용은 마침내 귀양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 기쁨을 맞는다. 고향에서 무려 18년 만에 큰형 약현과 식구들과의 만남은
약용에겐 큰 기쁨이었지만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형 약전이 함께 하지 못함은 가슴에 한으로
남는다.
4. 유산
정약용의 수많은 저서들 중 특히 일표이서로 일컬어지는 경제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와 정약전의
대표저서 자산어보가 후세에까지 전해져 우리가 이들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음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약용의 경제유표는 그 시대의 경제관념을 뒤엎는 사상으로 자신에게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으로 정리한 점은 왜 그를 뛰어난 사상가이자
실학자로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생각된다.
특히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의 경우에 그의 사망 후 그가 선친이 묻힌 묘지 옆에 묻히게 되면서 그의
유품이 묘지기 가족이 보관하게 된다. 하지만 묘지기 가족이 그들의 집을 수리하면서 그의 책을
도배지로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약용이 고향에 돌아와 성묘를
가게 되어 성묘를 한 후 우연히 약전의 필체를 발견하게 된다. 약전의 역작이 이렇듯 도배지로
사용된 사실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지만 약용은 이를 다시 복사하여 원본은 아니지만
복사본으로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끝내며
정약용과 그의 가족들의 역사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뛰어난 학자로서 뿐
아니라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사상을 가진 관리로서 시대를 앞서간 그의 사상은 지금도 우리가
되새겨 봐야 할 기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모두를 위한다고 하면서 오직 본인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디쯤에서
나와 우리를 구분지어야 할까?라는 여러 의문을 다산에게 묻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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