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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讀後行

에도와 오사카-‘도쿠가와 이에야스 25권’을 읽고

by 聚樂之生 2024.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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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거나 ‘앉으면 눕고 싶다라는 말로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고 가르치곤 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러한 마음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1600년대 초반, 일본 내 권력자들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전국에 전쟁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모여 평화를 이루고 난 후 전쟁 중 자신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지금 자신의 입지만을 생각하여 행동하는 군상들의 모습이 딱 이 말들에 맞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이에야스는 모든 무사들을 다스리는 쇼군의 위치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기본적인 사회안정을 위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지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특히 히데요시와 자신의 나이를

비교하여 히데요시가 죽은 나이를 감안하는 모습이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대를 위해

먼저 자리를 물러나는 자세는 자신 이후 일본의 지도체계를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젊은

지도자들의 활동으로 그들의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기본적인 마음은 본받을 만하지 않을까.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려는 수많은 지도자들의 모습과 비교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은퇴가 주는 영향이 모두에게 같은 생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후계구도속에서 2대 쇼군이 된 아들 이후 3대의 쇼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히데요리 생모의 행동,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이는 이에야스의 6남을 이용한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려는 6남의 장인과 스승인 나가야스, 신교를 몰아내고 구교를 정착시키려는

구교 측 선교사들, 이들 모습은 자신들이 왜 지금 그 모습으로 영화를 누리고 있는지를 까맣게 잊은

듯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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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가야스는 아무리 특출한 광산채굴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란 중에는

광대생활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평화가 찾아와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광산을 책임지는 자리와 함께 이에야스의 6남을 돌보는 위치에 올라 어찌 보면 인생 역전을 이룬다.

그럼에도 자신의 영달을 더욱 생각하여 6남과 6남의 장인을 이용하여 더 큰 힘을 얻고자 온갖 수를

생각하는 모습에서 향후 어떤 분란을 야기할 지 궁금해진다. 또한 히데요리의 생모는 권력의 힘이

어디로 갔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에야스의 호의를 호의로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대로

행동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의 책임을 묻지 않고 히데요시와의 관계를 생각하여 온전히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음에도 이에야스을 대하는 모습은 철없이 투정만 부리는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개혁으로 유럽에서의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일본까지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을까? 불교종파 간의 대립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른 일본에서 또 다른 종교분쟁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점점 흘러가는 모습이다. 교역과 선교를 위해 멀리 일본까지 온 유럽의 

선교사들이 자신의 나라와 교리를 지키기 위해 타국에서 반대파를 몰아내려는 모습은 당시 선교의

의미가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이에야스는 종교와 교역을 분리하여 종교의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음에도 교역과

종교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고자 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은 왠지 선교사라기보다는 투사라는 생각이

든다. 선교사로서 일부일처를 주장하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반대하면서 어찌 자국의 여자를 

권력자에게 바치며 권력자의 힘을 이용하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더라도 이 점은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단이 목표를 정당화

할 수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한편 천주교 신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종파를 지키기위해 선교사들이 온 나라에서 힘을 

빌릴 수 있음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오로지 종교만을 목적으로 그들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지 못하고 온전히 자신의 종교적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자국 내에서

분란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생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가 막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유럽의 국가에서 배를 불러들여 힘을 과시해 주기를  바라는

생각들이 신자들 사이에서 퍼졌다고 한다. 선의를 선의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데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도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다. 

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야스는 교역과 종교를 분리하여 세계 속에서 부를 키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적극 추진한다. 이는 구교와 신교의 갈등을 야기한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어느 한쪽과의 대립으로 나라를 곤경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이에야스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 쇼군의 지위에서 물러나 세계와의 교역확대를 꿈꾸는 이에야스. 이에야스 자신의 말대로

히데요시가 사망한 나이를 지나가며 자신의 시간을 살피는 이에야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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