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전투 이후 일본 내에서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모두 제거한 이에야스.
하지만 언제나 ‘신불’에게 뜻을 물어 자신의 행동을 정해온 이에야스로서 전쟁 사후처리도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자신이 꿈꾸던 온전한 평화와 자신의 사후를 위해
남은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1. 도요토미 가문의 멸망
이에야스는 오사카 전투를 통해서 히데요리에 기대어 전국을 혼란으로 이끌려하던 무리들을
제거하더라도 히데요리와 생모 요도부인은 살려 자신이 히데요시와의 약속은 물론 자신의 뜻을
지키려는 생각을 쇼군과 가신들이 따라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향후 또다시 문제가 될 화근을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히데요리와 생모를 벼랑으로 몰아 결국 자결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를 알게 된
이에야스는 자신의 뜻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척 상심하게 된다. 하지만 내심
이에야스로서도 화근을 없앤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이는 평화를 위해
이에야스가 행한 다른 조치들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후 히데요리측을 따라 전쟁에 가담한 추종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집요한 추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 가운데 히데요리의 아들로 알려진 어린 쿠니마츠까지
처형하게 된다. 이로써 완전히 도요토미 가문은 세상에서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히데요리가 과연 히데요시의 핏줄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히데요시는
많은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그 중에서 아들이나 딸을 낳은 여자가 하나도 없는데 유독
요도부인만이 아들을 낳았다는데서 의문을 갖는 것이다. 요도부인의 행실로 보았을 때 이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 진위가 무엇이든 도요토미 가문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사실이 되었다.
2. 권력강화를 위한 조치
오사카 전투를 통해 일본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의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그 중 하나로 자신의 아들 중 활달한 성격으로 현재
쇼군에게 가장 위협이 될 수 있는 타다테루와 그의 장인 다테 마사무네를 떼어놓을 생각을 한다.
이는 전국시대에서 잔뼈가 굵은 마사무네가 사위인 타다테루를 이용해 이에야스의 사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는 자신의 아들로 인해 평화가 깨진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이룩하고자 애쓴 평화를 기반으로 한 발전을 자신의 핏줄이 무너뜨리는 결과가 되기에
자신의 생애를 부정하는 문제라는 생각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타다테루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은 전혀 자신의 형에게 반기를 들 생각이 없음에도 그렇게
평가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언짢았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다만 자신의 장인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말을 따르면서 결과가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에야스의 첫 번째 아들 노부야스를 무척이나 닮았다는 타다테루라 애틋한 감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통해 다른 이들을 경고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인생은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3. 말년의 이에야스와 마지막 준비
이에야스는 쇼군을 통해 무가제법도를 공포하게 한다. 이는 무사들의 지위에 따른 의무을 제정한
것으로 무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기반을 더욱 다지고자 제정한
것으로 중앙집권적인 정치 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끝내며
이에야스는 운명과 숙명과 천명을 이렇게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쟁반위에 작은 찻잔을 하나
올려놓고 그 쟁반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운명이고, 쟁반의 가장자리 찻잔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쟁반의 가장자리를 숙명, 그리고 찻잔, 쟁반, 쟁반의 가장자리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천명이라고 말하며 ‘나의 천명은 무엇인가’를 깨달으라고 말한다. 이는 이에야스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신불의 뜻'은 무엇인가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끊임없는 전란을 일본 내에서
없애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달려온 이에야스는 자신의 천명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과연 어디까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인지, 숙명을 마주하여 이를 깨달을 수는 있는 것인지 이에야스에게 묻는다면 이에야스는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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