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항상 철학과를 가겠다고 말하며 성적이 아무리 잘 나와도 철학과를 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인기학과가 있어서 대학입시의 결과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다른 친구들은 말했다. 하지만 입시 결과가 나오고 철학과를 갈 수 있는 점수보다 높은 점수가
나와서 다들 인기학과를 갈 것으로 예상하고 다시 물었다. 그 친구의 대답이 무엇이었을까?
답은 철학과였다. 물론 그 친구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친한 친구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
단지 고등학교시절 자신의 진로를 그만큼 확실하게 알았던 친구는 없었기에 그 친구가 기억에
남아 있어 '철학'하면 그 친구가 생각난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으며 다시 한번 철학을 생각했다. 과연 철학이란 무엇일까?
갑자기 그 친구는 철학의 어디에 매력을 느껴 흠뻑 빠졌을까? 를 고민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철학하면 누가 무슨 얘기를 했고, 어떤 주의를 만들었으며, 그 사상적 배경에는
시대의 어떤 흐름이 작용했고 등 이를 외우고 시험을 치르느라 철학하면 외울 것이 많고 생각할
것이 많은 아주 골치아픈 학문으로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나만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이렇게 철학은 어렵고 좀처럼 생활에서는 쓸 일이 없는 학문으로만 생각했다.
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철학이라는 학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철학이란 기존의 사상을 익히는 것만이 아니라 사상의 탄생 배경을 통해 시대전환의 사상이 녹아
있는 의미를 이해하여 지금을 이해하고 깨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을 이해하고 깨는 것!
이것은 단순히 훈고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자기 삶을 꾸리고 세계를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사상적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확립된 가치나 이념에 사로잡혀 그것들을 반성 없이 그대로 적용하고,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이미 확립된 가치나 이념을 넘어서려고 노력한다."
"철학의 출발을 말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거나 또 배울 가치가 있는 덕목은 바로 ‘독립’이다.
‘독립’은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져서 거기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얻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불편해진다는 것은 이미 있는 생각들이 더 이상 나의 삶이나 새로운 문명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과 회의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철학적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초해야만 한다."
이처럼 이미 있는 생각들이 더 이상 나의 삶이나 새로운 문명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사고로
부터 자신만의 사상적 독립을 추구하는 것으로 '철학의 생산은 곧 사유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철학하는 일이란 남이 이미 읽어낸 세계의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갖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사유는 직접 세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유의 결과가 이론이 된다고 말한다.
다시 옛 친구를 생각하면 아마도 그 친구는 그 시절 배우고 익혔던 지식을 넘어 자신만의 사유의
독립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배운다는 것을 그저 책 속에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하나라도 더 익히려고만 하는데 이를 넘어서는 문제제기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해본다.
무조건 책만 믿는 것은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
- 진신서칙불여무서盡信書則不如無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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