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해석한 영화 '블랙 스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교수가
쓴 저서 '블랙 스완'을 말하는 것으로 탈레브 교수는 경영학자, 수필가, 위기분석전문가이다.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경제
영역에서 전 세계의 경제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음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를 정리해 본다.
–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흑고니 출현의
경고다.
– 이것은 관찰과 경험에 근거한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수천 년 동안 수백만 마리가 넘는 흰 백조를 보고 또 보면서 견고히
다져진 정설이 검은 백조 한 마리 앞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 검은 백조 원리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많은 경우, 검은
백조 현상은 예상 밖의 일이기 때문에 발생하며 또 그래서 그 효과가 증폭되는 것임에 유의하자.
– 자유시장이 작동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혹은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공격적인 시행 착오 끝에 행운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려라. 그리하여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려라.
– 비유나 이야기는 관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야기와 비유는 또한 기억하기 쉽고
읽기에도 즐겁다. 관념은 잠시 왔다 잊혀지지만 이야기는 오래 남는 법이다.
– 서재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과 관련된 책을 채워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지식이 쌓이고 읽은
책도 높이 쌓이지만, 서가의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점점 늘어나 겁을 먹게 한다. 진정 알면 알수록
읽지 않은 책이 줄줄이 늘어나는 법이다. 읽지 않은 책이 늘어선 대열, 이것을 반서재라 부르기로
하자.
– 역사와 만나게 될 때 인간의 마음은 세 가지 증상을 겪는다. 이 세 가지 증상을 나는 삼중의
불투명성이라고 부른다.
1) 이해의 망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꿰고 있다고 저마다 생각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아니 무작위적이다.)
2) 사후 왜곡. 마치 자동차의 후면경을 들여다보듯이, 우리는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야 관련
사건들을 돌아보게 된다.(역사책에 기술된 역사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보다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3) 사실 및 정보에 대한 과대평가와 권위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겪는 장애로 인한 것들.
특히 그들이 ‘범주’를 만들어 낼 때, 즉 ‘플라톤적 사고를 펼칠 때’ 일어난다.
– 일단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 뒤에는 그것이 뜻밖의 것이 아닌 듯이 보이게 된다.
‘소급적 개연성’이라는 것이 작용해서 그것을 희귀한 사건이 아니라 있을 법했던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퍽 유어 머니(Fuckyoumoney)’라는 말이 있다. 표현은 좀 거칠지만, 노예 계약에서 벗어나서
빅토리아시대 신사처럼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돈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완충장치다.
그것은 멋대로 펑펑 쓰고 살 만큼은 안되지만, 월급에 목을 매지 않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줄 만큼은 되는 돈이다. 그것은 돈에 영혼을 파는 것을 막아 주며, 외부의 권위 – 어떤 외부의 권위든
간에 – 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준다.
– 평범의 왕국이라는 이상향에서는 개별 사건 하나하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어렵고
집단적으로만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왕국을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만약 표본이 크다면, 어떤 단일한 사례가 전체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큰 관측값
하나가 인상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 사실, 지식을 추구하는 모든 시도는 우리의 직관에 위배되는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관습적인
지혜와 기존의 과학적 믿음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검은 백조는 효과를 발휘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부정적인 검은
백조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 검은 백조를 도외시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수적인 문제점들이다.
1. 보이는 것들 중에서 보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며, 그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일반화시킨다. - 확인 편향의 오류
2. 인간은 명확한 패턴을 좇는 플라톤주의적 갈증에 부합되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속인다.
- 이야기 짓기의 오류
3. 검은 백조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 인간은 검은 백조에 대비해 프로그램되지 않았다.
4. 우리가 보는 것이 거기에 있는 전부는 아니다. 역사는 검은 백조들을 우리 눈에서 가려 버리며,
그리하여 이러한 사건들의 확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든다. - 이것은 말 없는 증거에 의한
왜곡이다.
5. ‘땅굴 파기’에 몰입한다. -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검은 백조들은 포기한 채) 잘 정의된 몇몇
불확실성의 원천들, 즉 지나치게 명확한 검은 백조 리스트에만 집중한다.
– 어떤 규칙을 검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규칙이 통하는 사례들을 찾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적으로 이 규칙이 통하지 않는 사례들을 찾는 방법이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다시피 진리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반증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점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사후합리화 : 사건들의 단순한 선후 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하는 오류
– 우리는 영장류 가운데 인간 종의 성원으로 규칙에 대한 허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어진 문제의
차원을 축소시켜 그것들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아니, 안타깝지만 욱여넣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정보가 무작위적일수록 차원이 더 커지며, 따라서 요약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거꾸로, 요약할수록 더 질서 정연해지고 무작위성은 감소한다. 말하자면, 단순화를 강요하는 바로
그 조건이 세계를 실제보다 덜 무작위적인 것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이다.
– 우리가 대체로 검은 백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지만 어떤 검은 백조는
사람들의 마음에 지나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답은 희귀한 사건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검은 백조로, 사람들의 입에 이미 오르내리고 있어서
텔레비전에서 들을 수도 있는 검은 백조다. 두 번째 검은 백조는 있음 직하지 않게 여겨지는 희귀
사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연히 입에 올리기조차 수치스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장담하건대, 첫 번째 검은 백조는 과대평가하고 두 번째 검은 백조는 과소평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 성공이 한쪽에만 집중될 때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것은 두 배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규칙성이라는 허구적 보상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호르몬 체계 역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야금야금 늘어나는 보상 방식을 원한다. 이러한 보상 체계에는 안정과
편안함이 지배하는 세계관이 깔려 있기 때문에 확인 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 검은 백조 사냥꾼들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 아니, 수치심을
강요당한다. “자네에게 정말 기대가 컸는데, 자네는 우리를 실망시켰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죄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보상 체계는 열매를 쉽게 맺어 주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고 신망을 잃고 형언하기 어려운
수치심에 휩싸이는 과정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 우리의 행복은 한 번의 즐거움이 얼마나 강력한가 보다는 심리학자들이 ‘긍정 효과’라 일컫는
긍정적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에 훨씬 더 좌우된다. 요컨대 좋은 소식은 좋은 소식으로
충분할 뿐, 어떻게 좋으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운 인생을 사는 방법은 작은
‘효과’를 가능한 한 균일하게 여러 차례로 나누어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저 그런 좋은 소식이라도
그 횟수가 많아지면 한 번 쏟아지는 엄청난 희소식을 능가한다.
– 검은 백조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 결과가 불균형하다는 것이다.
– 내가 패배자로 행동하면 상대도 나를 패배자로 대우한다. 우리를 평가하는 척도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잘 되고 못 되고의 절대적 척도는 없다.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대중의 뇌리에서 철저히 잊혀진 수천 명의 작가를 생각해 보라. 평론가들은 이들의 존재를
도외시한다. 산더미같이 쌓인 원고 뭉치들을 우리는 그저 출판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한다.
–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는가를 보여주는 진짜 시금석은 이야기 짓기가 아니라
예견이다.
–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란 판단의 척도가 아니라 확신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원천이다. 여기서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상자 속의 것’을 열어 보지 않고도 예견하는 플라톤적 사고,
즉(사리에 맞지 않는) 법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 신념이라는 것이 어떻게 현실 인식을 방해하는지, 그리고 전문가들의 예측에 포함된 맹점을
어떻게 일반화하여 설명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들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지
들어보자.
“그건 전혀 다른 게임이었다니까요.”
“극단점이 터져 나오는 통에....”
“거의 옳았었다 "는 방어 전략
– 돌발적 사건은 언제나 한쪽 방향으로만 사태를 몰고 간다. 즉 비용을 상승시키고 시간을 더
잡아먹는 것이다.
– 빗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예측은 세 가지 오류는 낳는데, 이는 모두 불확실성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오류. 중요한 것은 가변성이다.
두 번째 오류는 프로젝트가 연장되면 당초 예측이 설명력을 잃어 간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세 번째 오류. 이것은 아마도 가장 심각한 오류일 텐데, 예측 대상이 되는 변수가 무작위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 검은 백조 현상에 세 가지 속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견 불가능성, 파급의 막대함, 사후
합리화 등이 그것이다.
– 예견이 가능할 정도로 미래를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미래에 속한 요소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미래에 대한 규칙을 끌어낸다. 그런데 과거에 입각해서 미래를
예측하다 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과거의 동일한 자료에서
얻은 이론이 정반대의 결론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인간 뇌의 가장 효율적인 용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추론을 미래에 투사시켜서 그에 대응되는
결과를 얻는 게임을 행하는 능력이다.
– 우리가 적절한 모델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시간이 충분하고 그 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면) 얼음
덩어리가 어떻게 녹는지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은 당구공의 움직임보다 복잡도가 덜한,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라서 예측하기가 쉽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이 실제로 얼음이 녹아서 생긴
것이라면, 상상해 낼 수 있는 얼음 덩어리의 모양이 무한하다. 첫 번째 사고 방향, 즉 얼음
덩어리에서 물로 변하는 과정에 대한 사고 방향은 전진 과정이라 불린다. 두 번째 사고 방향은
후진 과정으로, 훨씬 복잡하다. 전진 과정은 물리학과 공학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사고
방향이고, 후진 방향은 반복과 실험이 불가능한 분야, 즉 역사적 접근에서 채택되는 사고 방향이다.
– 어떤 사건의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는 (알아낼 수 있는) 그 결과에 집중함으로써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불확실성에 대한 중심적인 개념이다.
– 언어학자 조지 지프는 언어의 특성을 연구한 결과 오늘날 지프의 법칙이라 불리는 경험적
규칙성을 찾아냈다. 지프의 법칙은 불균형이 형성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시각이다.
그가 서술한 원리는 이렇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그 단어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 그것을 찾는 데 힘이 덜 들고, 따라서 언어 사용자가 자기 사전에서 단어를
고르는 것은 이전에 사용한 빈도에 의존한다.
– 가우스 정규분포곡선의 핵심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대부분의 관측값이 보통의 값, 즉 평균값에
몰려 있으며,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그 편차의 확률은 점점 급속도로(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딱 한 가지만 기억하려 한다면,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확률이 감소하는 속도는
급격히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 프랙털이란 만델브로가 만들어 낸 용어로, 거칠게 조각난 모양의 기하학을 서술하기 위해
‘조각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프락투스(fractus)’에서 가져왔다. 프랙털은 기하학적 패턴이
다양한 크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양상을 뜻한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보의 불투명성과 불완전성, 세계 작동 원리 파악 불가능성이다.
역사는 그 속내를 우리 앞에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추측만을
할 뿐이다.
– 이론의 우아함은 종종 플라톤주의가 유도한 결과물이자 약점이 된다. 이론의 우아함은 우아함
자체를 추구하는 쪽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론은 약물(혹은 정부)과 같은 것이다.
이론은 이따금 쓸모없고, 가끔만 필요하며, 언제나 그 자체의 완벽성에만 몰입되는 경향이
있으며, 또 이따금 치명적이다.
–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좇아가려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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