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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讀後行

시집 '냄비는 둥둥'을 읽고

by 聚樂之生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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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보이는 서점에 문득 들러 눈앞에 들어온 책 한 권이 자신의 인생책이 된 적은 없는가? 

별 기대 없이 들른 음식점이 내 입맛에 꼭 드는 맛집을 만난 적이 있는가?

이런 만남이 주는 만족감은 아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 탓이 더 크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자신만이 갖게되는 '우쭐함'으로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연히 김승희 작가의 시집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시집을 가까이하지 않던 사람이라 많은 시인을

알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난 시인의 작품에서 나만의 감정을 느낄 때면 왠지

내가 뭘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하루종일 좋은 기분이 이어진다. 이 시집에 있는 시 중에 마음에

드는 시가 여럿 있어 그중 몇몇을 옮겨본다.  

 

평범한 달력

 

평범한 달력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달력은 더 이상 평범한 숫자가 아닐 것이다

기어코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끝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반죽중

 

이것은 참회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다.

그저 불안의 자서전......

나는 언제나 반죽 중이었고,,

어디에 나는 있었을까,

언제 나는 있었을까,

 

미제레레

 

미제레레 메이(miserere mei)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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