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그 책에서 말하는 내용에 얼마나 공감하는가는 그 책에서 받을 수 있는 깨달음의
깊이를 달리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소설의 경우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
성격이 주는 영향은 독서를 하며 얼마나 몰입하게 되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같은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므로 이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평가가 그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공감받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읽고자 하는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니, 후기에서 공감을 많이 받은
도서를 골라 독서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책에서 느끼게 되는
감동은 무언가 횡재를 한 듯한, 그래서 무시하지 못하는 선택으로 자신의 탁월한 안목(?)을
은근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난 책이 이 ‘피에로들의 집’이다.
이 책의 저자 윤대녕 작가는 소설가로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원(圓)〉이 당선되어
등단하여 1990년〈어머니의 숲〉과 〈사막에서〉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았다. 1995년 소설집
《은어낚시통신》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분류됐다. 정치/사회
쟁점에 무관심, 도시다운 감수성, 수공업다운 정성이 느껴지는 미문(美文) 등이 돋보인다고
평가받았다.
책은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위축된 마음과 사귀던 여자와의 갑작스런 이별로 혼돈의 시간을 보내던 화자가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서 자신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들어와 살면서 자신을 도와줄 것을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만나는 환경적으로, 심적으로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화자의 모습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 명우의 환경에 대한 설명으로 소설이 시작하면서 명우를 집으로 초대한 작품 속 마마는 왜
그를 초대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 마마는 명우를 세 번 봤다고
말한다. 그 시기나 기회는 말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 만남은 아마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세 번째 만남에서 자신이 거주하는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입주할 것을 제안하는 장면이 이
소설에서 큰 의미가 있는 듯 한데 이 부분에서 왜 하필 명우를?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어 어찌보면 명우도 이에 해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안한 것이 아니라 명우의 어찌 보면 사람들을 대하는 능력이 필요해서였다면 조금은 명우에 대한
언질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하던 사람이 당한 아픔에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의 문을 닫은 젊은이, 부모에게서 어찌보면
버림받은 청소년,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자신을 타인과의 관계를 경계하는 여성, 마마와는
친인척으로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풀려고 하는 여성, 그리고 화자가 함께 사는 ‘아몬드나무
하우스’를 만든 마마.
마마는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생활공간을 만들었을까? 그저 안타까운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저자는 이 소설을 말하기를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여 쓴
작품이라고 말한다. 가족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각각의 난민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우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하면서 각각의 인물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어찌 보면
모두를 아우르는 기둥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각자가 품고 있는 커다란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는
명우의 모습 중에 고등학생인 정민과의 ‘걷기’가 가장 마음에 닿았다. 마음 기댈 곳 없는 정민이 살짝
다가왔을 때 그저 묵묵히 함께 걷는 것만으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명우가 ‘어른’이라는 말을 곱씹게 한다. 아마도 마마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대신할 인물로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명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만난 두 번이나 몰래 살펴보고 세 번째 제안을 한 것이 아닐까.
사진작가이자 명우가 호감을 갖고 있는 윤정과의 첫 만남에서 윤정이 경전선 기차여행에 대해
말하면서 명우의 ‘경전선을 타고 가다보면 특별히 무엇이 보이나요?’라는 질문에 윤정의 대답에서
‘내가 삶에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보고 싶은 게 있나요? 그런게
있다면 마침내 보이겠죠’ 그저 들어오는 풍경을 마냥 보며, 흘러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윤정은 아마도 자신의 삶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사진을
찍는지도 모르겠다.
삶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알아야 마음의 무게를 덜 수 있을까? 소위 조카의 출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이모 마마와 조카인 현주 사이의 갈등은 인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과연
자신의 아버지가 이모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카는 견딜 수 있을까? 그 사실을 꼭 알려야
할까? 왜 현주는 이 사실을 꼭 알려고 할까?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결국 소설 속에서는 현주가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또한 어떤 사람에 관해서도 알면 알수록 감정에 입체감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어느 세계나 그 나름의 깊이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실제로 끝이 없습니다.”라는 말은 명우가
북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 커피를 배울 때 들은 말이다. 이 말처럼 명우가 ‘아몬드나무 하우스’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과의 관계에 깊이를 더하는 모습이 인생이라는 생각과 그 깊이를
헤아리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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