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쟁은 끝났다!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칼을 맞대었지만 동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서군은
이제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가문의 안녕을 고민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에야스는 전쟁이 끝난후
전쟁에 참가한 영주들의 영지를 조정하여 전쟁에 따른 상벌을 명확히 한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권력의 일인자가 되었을 때 영주들의 포상과 나라의 부를 늘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무리하게
조선침략을 생각했지만 이에야스는 영지 크기를 조정하고 배분을 통해 일단의 안정을 꾀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성격을 비교할 때 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노부나가는 새가 울지 않으면 죽이고, 히데요시는 새가 울도록 앞에서 쇼를 하고,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노부나가는 전쟁을 없애고자 하는 마음을
힘으로 추진하다가 측근의 배신으로 죽음으로써 뜻을 굽히게 되고, 히데요시는 자신의 마음대로
뜻을 펼치다가 잘못된 판단으로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이를 보면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타인과의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말이다.
이에야스는 절대권력을 잡았으면서도 히데요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손녀와 히데요리의
결혼을 진행하며 히데요리의 권위를 지켜주고자 노력한다. 또한 히데요리의 교육을 위해서도
신경을 쓰지만 히데요리 생모의 반대로 훌륭한 스승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서
이에야스는 자신의 교육관을 나타내는데 우리가 보통 천재, 영재, 수재 등으로 자질을 평가하는데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여 교육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히데요리의 자질을 평가하기를 히데요리의 측근에게 물으며 가능성을
생각하지만 생모의 고집이 이조차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인생의 변곡점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국에서 전쟁을 없애고 나서 이제 무사들의 관심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물론 이에야스는 무사들이 싸움으로 지내온 세월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도록 스님이나
학자들을 통한 강연을 실시하는 등 향후 일본내의 질서를 수립하는데 애를 쓴다. 이를 위한
법령으로 무사가 백성을 함부로 죽이는 일을 금하고 백성의 도망이나 이사를 금하게 된다. 또한
이제 시작된 평화가 아직은 온전히 정착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자신은 자신의 후손들이나 그에
걸맞은 인재들이 지속해서 결실을 만들어 낼 토대를 만드는데 힘을 쏟는다. 이를 위해 히데요시와는
달리 무사의 대장이랄수 있는 쇼군으로서 군사력을 유지하여 영주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통상 우리는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이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일을 할 모든 경우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내 주변에 또는 멀리에라도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에 동의하는 인물이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구인광고를
올리고 인터넷에 수많은 정보를 등록하여 자신에게 맞는 인물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옛날에는 그런
기회를 갖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았을테니 인재를 구하는
일의 어려움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에야스는 참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전국에
평화를 이루겠다는 뜻을 시작하는 시점에 나라의 부를 이룰 수 있는 광산업자를 만나게 되고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우겠다는 상인들의 뜻이 한층 커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나면 뜨거운 걸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히데요리 생모는 세키가하라 전투 후 이에야스가 그 전투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세월이 조금 흐르자 그 고마움은 사라지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히데요시가 살아서 말한대로 히데요리가 성장하고 난 후 그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을 요구하듯이
행동한다. 생모의 이같은 행동은 자식의 교육문제와 자신의 처신, 히데요시가 남긴 재산의 처리
문제로 히데요시 가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계급의 세습이
가능했던 그 시대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이에야스는 후계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자식이라도 교육을 통한 자질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습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상인들은 전국이 안정되어 가면서 더욱 외국과의 교역을 활발히 성장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남아에서 만나는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과의 교역만이 아니라
그들과의 갈등 속에 외국에 형성된 일본인들의 마을이 겪을 수 있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 이때가 1600년대 초반이다. 우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고 전쟁후유증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혼돈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이들은 외국과의 갈등까지 고민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답답해진다. 과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려본다.
'배우기 > 讀後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의 콘텐츠로 돈벌기 - ‘게으르지만 콘텐츠로 돈은 잘 법니다’를 읽고 (37) | 2024.09.25 |
---|---|
학습방법을 고민하다 - ‘울트라러닝’을 읽고 (6) | 2024.09.23 |
‘무자본으로 부의 추월차선 콘텐츠 만들기’를 읽고 (29) | 2024.09.13 |
심리적 무게 이겨내기 - ‘클루지’를 읽고 (6) | 2024.09.11 |
세키가하라 전투 - ‘도쿠가와 이에야스 22권’를 읽고 (6) | 2024.09.09 |